통일부가 1984년 9월부터 1990년 7월까지의 정치·경제·체육 분야 남북회담 문서를 공개했다. 2022년 이후 여섯 번째 남북회담 문서 공개다.
13일 통일부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분단 이후 최초로 개최된 남북경제회담 및 국회회담 예비접촉 등 1980년대 중·후반 남북 간 대화·접촉의 실상, 1990년대 남북고위급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 간 예비회담 기록 등이 2266쪽에 걸쳐 담겼다.
구체적으로 △남북경제회담(5차례, 1984년 11월~1985년 11월)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2차례, 1985년 7월~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중재 ‘로잔느’ 남북체육회담(3차례, 1985년 10월~1986년 6월)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8차례, 1989년 2월~1990년 7월) 등의 진행과정과 회의록 등이 포함됐다.
남북대화 사료집 제12권에 따르면 1984년부터 1985년 초 북한은 판문점 총격 사건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팀 스피리트’를 이유로 제2차 남북경제회담 일정을 일방적으로 두 차례 연기했다. 특히 1986년 1월 팀 스피리트 훈련을 핑계로 남북대화와 남북경제회담을 완전히 중단했고 이후에도 북한은 남한의 접촉 재개 요구를 줄곧 거부했다. 그러다 1986년 6월 한국 국방부 장관과 주한 유엔군 사령관에게 ‘3자 군사회담’을 제의하고 나섰다. 다만 우리 측은 북한이 약속한 대화에 응하지 않고 군사훈련 중단을 갑자기 들고 나온 것에 ‘불손한 의도’가 있다고 보고 이를 거부했다.
북한은 당시 군사회담을 추진하며 ‘비핵화’를 표면적 이유로 내세웠는데 이는 현재의 정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때만 해도 핵 개발 능력이 없었던 북한은 한미의 군사적 능력을 두려워하며 ‘평화적 안건’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86년 12월 31일 최고인민회의 8기 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일성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김 주석은 “우리는 남침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백히 밝히며 아울러 조선반도를 하루 빨리 핵무기가 없고 전쟁위험이 없는 비핵지대, 평화지대로 만들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며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세계적인 열핵전쟁으로 번져 우리 민족과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가져다 주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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